쿰 376호
{ 저자의 일상 } 이덕주 《이덕주의 산상팔복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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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차를 타고 받은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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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걷는 은총을 누리고 있다. 은퇴 후 남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서 좋고, 건강에 좋고, 걸으며 묵상도 하고 기도도 하고 찬송도 부를 수 있어 1석 3조 은혜다. 지난 봄 일이다. 《이덕주의 산상팔복 이야기》 교정 원고를 홍성사 편집부 식구들에게 넘겨주고 망원동에서 출발하여 한강변 산책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여 행주나루에 이르러 창릉천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쉬 그칠 것 같지 않아 둑방길로 올라가 폐품 처리하는 공장에 들러 그곳 외국인 노동자가 빌려 준 우산을 쓰고 다시 걸었다. 처음 걷는 길이라 방향을 잡기 어려웠다. 길가에 ‘월드컵운동장→’이란 간판이 보이기에 따라 올라갔다. 그렇게 10분쯤 걷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걷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오고 가는 자동차는 시속 100Km가 넘는 듯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길은 자동차 전용도로, 사람이 걸어서는 안 되는 제2자유로였다. 두려운 마음으로 출구만 나타나길 바라며 길가 황색선을 따라 10분쯤 갔을까? 앞쪽에서 경고등을 반짝이며 경찰 순찰차가 오더니 내 앞에 멈췄다. “타세요!” 앞자리의 경찰 지시로 차 문을 열고 뒷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난생 처음 경찰차를 탔다. 그때부터 달리는 차 안에서 심문이 시작되었다. “뭐하시는 분입니까? 여긴 어떻게 올라왔어요? 저기 간판 안 보이세요? 여긴 자동차 전용도로입니다. 얼마 전 여기서 인명 사고가 났단 말이에요.” 난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잘못했습니다.” “몰라서 그랬습니다”만 되풀이했다. 심문을 끝낸 경찰은 “우리가 발견해서 다행이지 여긴 위험한 곳입니다. 다시는 그러지 마세요. 버스 정류장에 내려드릴 테니 안전하게 돌아가십시오” 하였다. “감사합니다”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버스정류장 건널목에 차가 멈추었다. 나는 경찰차에서 내리려고 문고리를 찾았는데 아뿔싸! 그 차 뒷문에는 문고리가 없었다. 오른쪽, 왼쪽 모두 밋밋했다. 그러고 보니 그 차는 죄수를 수송하는 차량이었다. 체포한 범인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뒷자리는 안에서 열지 못하도록 해놓았다. 어쩌지 못해 허둥지둥하는 나를 지켜보던 앞자리의 경찰은 말없이 앞문을 열고 내리더니 뒷문을 열어 나를 내리게 해주었다. 그리곤 가던 방향으로 떠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비몽사몽간에 들리는 음성, “이제 알았냐?” “뭘요?” “밖에서만 열린다는 것!” 그러했다. 죄인 석방은 밖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안에서는 아무리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었다. 나는 죄수들이 앉는 경찰차 뒷자리에 앉아 죄인처럼 심문을 당했고 차가 선 다음에도 경찰이 밖에서 열어 준 후에야 나올 수 있었다. 경찰차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죄수를 가두는 유치장이나 감방 문도 그러했다. 밖에서라야 열 수 있는 문! 죄에서 사함을 받는 것, 구원의 은총도 그러했다. 죄인은 스스로 자신을 구할 수 없다. 아무리 자유하고 싶어도 자유할 수 없는 것이 죄인의 처지다. 그런 죄인을 불쌍히 여겨 밖에서 열어 주시고 구해 주시는 주님의 은총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 사건은 100% ‘밖에서’ 임하는 은총 사건이다. 죄인은 그저 괴로워하며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kyrie eleison). 주님의 은총이 임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러면 그분의 때에, 그분의 손길로 밖에서 열어 주시는 은총으로 자유하게 된다. 석방된 죄인은 그저 감사하고 겸손할 뿐이다.
명색이 목사요, 신학교 교수였으면서도 구속의 은총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임하는 것인지 모르고 설교하고 강의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러면서도 늦게나마 깨달은 진리로 감사했다. 나의 실수마저 은총으로 바꿔 주시는 그분의 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