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 354호
[살며 사랑하며] 마은희 쿰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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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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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열흘이라는 시간을 남겨 두고 홍성사로부터 자유로운 글쓰기에 관한 원고 청탁을 받았다. 다음으로 미룬다 해도 선한 것이 나오랴 하는 마음으로 하루 정도 고심한 끝에 수락했다. 수락과 함께 부담의 짐은 오롯이 나의 몫이 되었다. 주제도 정하지 않고 마땅한 글감을 고르지도 못한 상태에서 말이다. 그때부터 반백년 살아온 내 인생 전반을 돌아보면서 마땅한 글쓰기 주제를 훑었고 찾았다. 목회자 아내로서의 삶, 독서를 통해 만난 예수님, 환경 문제 등 다양한 글감을 고르던 중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생각이 머물렀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가장 자기다운 자신과 직면하는 것이다. 독서를 통해 내가 공감하는 글귀를 읽으며 감동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그날의 감정과 그날의 사건을 십분 활용해 이면의 가장 참다운 ‘나’에게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어느 성도님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다이어리를 십 년 동안 사용했다. 타인을 의식하는 어떠한 체면이나 거짓된 모습 없이 글을 쓰면서 순수한 나와 직면했던 순간순간들이 빼곡이 기록되어 있다. 그날그날에 따라 성도들의 기도제목도 올라와 있고 친구에게, 때로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성도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편지글도 있다. 나의 일기는 때로는 탄원시로, 감사시로, 기도문으로 시시각각 변한다.
둘째,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품격을 높여 준다. 말을 하게 되면 나쁜 말도 나올 때가 많지만 적어도 글을 쓴다는 것은 표현에서 정화된 글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남편과 22년 동안 살아오면서 특별한 친밀감을 유지한 비결 역시, 나쁜 말이 배제된 편지글 속에서 품격을 높여 주는 만남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편과 나는 신학대학원에서 만나 연인이 된, 그야말로 캠퍼스 커플이다. 1학년 때는 히브리어 스터디 모임으로, 도서관에서나 학교 식당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거나 가끔씩 산책하는 사이였다. 물론 방학이 되면 시부모님이 목회하시던 울릉도로 놀러도 가는 사이였지만, 동행했던 여느 다른 전도사님처럼 그런 동료였는데 연인으로 바뀌었으니 내 입장에서 어색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연애도 잠시, 우리는 48일 연애하고 1년을 떨어져 지냈다. 남편이 교환학생으로 미국으로 유학 가는 바람에 그때의 애틋함이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것을 다 편지글로 쏟아냈으니… 칭찬하고 칭찬하고, 격려하고 격려하고, 그리워하고 그리워했다. 참으로 많이. 나중에 상담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좋은 관계의 비밀은 칭찬탱크에 긍정에너지가 많이 있을 때 한두 개의 부정이나 비난은 가볍게 지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정보다도 긍정적인 것이 5~6배가 되면 부정적 피드백이나 위기가 오더라도 살짝 지나가면서 만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보다는 글을 통해 지지해주고 세워주는 품격된 나를 서로에게서 발견하는 시간을 1년이나 충분히 가졌던 셈이다. 끝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현실을 살게 하며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하는 시간이다. 흘러가는 물처럼 베풀어 주신 많은 주님의 은혜들이 단 한 줄의 써놓은 글도 없이 지나쳐 버리기만 한다면, 내 삶에 베풀어 주신 주님의 그 많은 은혜들을 어찌 기억하랴. 글을 쓴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삶에 개입하심을 다시금 인식하는 시간이며 주님의 은총을 감사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영원한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방식이기도 하다. 줄리아 카메론이 제안한 ‘모닝 글쓰기’는 참 좋은 대안이 되는 것 같다.
모닝 글쓰기란 아침에 일어나서 의식의 방어막이 자리를 차지하기 전에 뇌의 흐름를 따라 가는 글쓰기 작업이다. 그녀의 모닝 글쓰기가 마음에 드는 것은 손으로 쓰는 작업이기 때문이며 어떠한 제한이나 걸림돌 없이 생각나는 대로 써나가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글쓰기를 호흡에 비유한다. 충분한 글을 썼을 때는 마음에 여유가 있고 글쓰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날은 짜증과 불안이 나타난다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2019년 새해에 글쓰기를 통해 위선과 가식이 아닌 내 안에 참 나와 만나는 귀한 시간이 되며, 주님 안에서 존엄한 품격이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나도 살고 남도 살리면서 현재 베풀어 주신 많은 은혜들을 놓치지 않고 부여잡는 새날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