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일상} 김구원 《쉬운 구약 개론》 저자, 전 개신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


복음과 호연지기

요즘 읽고 있는 책 중 하나가 맹자이다. 오래전부터 서가에 꽂혀 있던
책이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읽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다시 손에 들게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맹자는 주나라 황실의 힘이 약해져 패왕 제후들이 서로
싸우는 사이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진 전국시대(주전 372~219년)에 활동한
정치 사상가이다. 보편적 교훈을 담은 공자의 논어와 달리 맹자는 특정 시대
문제를 배경으로 하는 정치사상을 담고 있다. 성서학자가 무슨 맹자 타령인가
하는 분도 있겠지만, 구약 성서를 인문학적으로 읽는 일에 관심이 많은
필자에게 맹자 사상에서도 성경적 진리의 먼 메아리들이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마가복음 1장 15절은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선포하신
첫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메시지는 예수님이 전하는 ‘복음’이 무엇인지 가장
정확하게 전달한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이 메시지는 필자가 ‘/’로 표시한 것처럼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에 사용된 완료형 동사는 동작의 결과를 강조하는 어법이다. 다시
말해 “때가 찼다”는 말은 무언가 중요한 사건이 시작되었다는 뜻이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여기에 있다는 의미이다.
후반부의 내용은 그런 변화된 현실, 즉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사람들의 합당한 반응이다. 후반부에 사용된 명령형 동사는 모두 현재형이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현재 명령형의 뉘앙스는 그 동작의 ‘지속’과 ‘반복’에
있다. 다시 말해 “회개하라”는 말은 지속적인 회개의 삶을 살라는 뉘앙스를
담고 있고, “복음을 믿어라”도 믿음은 가르침에 대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그
가르침에 신실히 따르는 삶임을 보여 준다. 하나님 말씀이 인간 보편적 가치를
가장 온전히 실현한 것임을 고려하면, 복음을 믿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따라, 즉 정의롭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흥미롭게도 맹자 공손추편 2장에서 복음을 믿는 삶에 대한 먼 메아리를 들을수 있다.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온다. “감히 묻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떤 점에서
뛰어나다 할 수 있습니까?”(敢問夫子惡乎長). “나는 말을 알며”(我知言), “나는 내
호연지기를 잘 기르네”(我善養吾浩然之氣). 여기서 지언(知言)과 호연지기(浩然之氣)는
맹자가 다른 사람들보다 잘하는 것으로 언급되는 두 가지다. 즉 맹자의 일상은
‘지언’하고 자기의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비록 맹자가
말하는 ‘지언’은 문맥적으로 말의 본의를 분별하는 것이지만, 필자는 ‘지언’의
문자적 의미에 기대어 복음적 삶의 한 요소인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가는 것’에
적용하고 싶다. 한편 호연지기는 세상을 채우고도 남을 넓은 기상을 의미하는데,
맹자에 따르면 이것은 의롭게 도덕적으로 살 때 얻어진다. 그것은 한 번 우연히
행한 의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非義襲而取之也), 매일매일 일상의 실천이 쌓여 내
안에 생기는 것이다(是集義所生者). 일상을 정의롭게 살 때 내 안에 쌓이는 기는
세상을 채우고도 남는 기이기 때문에 ‘호연지기’라 불리는 것이다. 즉 선한
일상을 신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을 선한 기운으로 채우는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복음에 신실한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날마다 말씀을
공부하고 그 말씀에 의존해 매일매일 진리와 의와 사랑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쁨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맹자는 죄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내는 올바른 삶의 태도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가 직접 실천한 지언과 호연지기를 기르는 삶은 분명 복음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돈과 권력, 명예가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닌 공의와 자비를 매일매일 실천하는 것(지언과 호연지기)이
‘(계속) 회개하고 (계속) 복음을 믿어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