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정석원 화성에 위치한 예수향남교회에서 청소년들을 꿈꾸게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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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위기,
‘어떻게’가 아닌 ‘누구’다!

소설가 이청준은 《당신들의 천국》에서 사람들 간의 괴리를 보여 준다.
천국을 말하는 자와 듣는 자들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다.
한쪽에서는 ‘우리들을 위한 천국’이라 말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당신들을 위한 천국’이라 여긴다. 동상이몽인 셈이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를 대하는 관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기독교를 비판하는 말들을 요약하면 ‘당신들을 위한 기독교’
라는 불신이다. 그 불신의 중심에는 목회자가 있다.
한 주간지에서 설문조사한 ‘직업 신뢰도’에서 목회자는

종교인 중에서는 가장 낮고, 일반 직업군 중에서도 최하위권에 자리했다.
부정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단면이다.

이따금 이런 괴리와 동상이몽을 직면하게 될 때면 자조 섞인 물음이
생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 것인가?’
최근에 출간된 《목사, 그리고 목사직》은 위와 같은 문제의식과
결을 같이한다. 목회 일선에서 퇴장했던 저자는 ‘목사에게 던지는
7가지 질문’을 가지고 등장했다. 이 질문들을 통해 ‘목사, 그리고 목사직’
의 역기능을 유감없이 성찰하고 비판한다.

지금까지 목회자가 목회자를 대상으로 쓴 글이나 책이 종종
소개됐다. 개인적으로 그런 유의 글을 유심히 읽으면서 생겼던
아쉬움이 있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적지 않게 ‘비판을 위한 비판’이
주를 이루거나 ‘방법론’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두 부류 모두 순간적인 각성효과는 있었지만

장기간 곱씹어 보게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목사, 그리고 목사직》은 차가운 비판과 동시에 따뜻한
대안을 제시한다. 진단과 처방이 ‘회복’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법론’보다는 ‘존재론’을 다룬다. ‘How’가 아닌 ‘Who’에 초점을 둔다.

‘목회자 위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질문에 있다. 바로 ‘목회자라는 존재’에 있다. 저자가 말하는 목회자
존재는 ‘사람들의 어부’, ‘소명인’, ‘전도인’, ‘고독인’, ‘사람을 아는 어부’,
‘지금-여기 교인들을 위한 어부’, ‘심판을 믿는 사람’으로 정리될 수
있다. ‘당신의 존재는 이 존재인가?’
이 물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곱씹게 된다. 이 존재에 대한 추구는 오롯이 독자에게
화두가 되어 남기 때문이다.
이 책 저변에 깔린 ‘참 목회자상’을 개인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면,
“아는 것과 믿는 것과 사는 것이 서로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하고 싶다.
이 세 가지를 통합해 주는 두 기둥은 ‘절대화’와 ‘객관화’다.
먼저 절대화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 하는 목회’다.
그다음 객관화는 ‘나를 목회하는 목회’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나를 목회하는 것이 목회의

시작이자 끝인 것이다. 

저자는 목사와 목사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목사가 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나 목사직을 올곧게 수행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혹자들은 목사직을 올곧게 수행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책 곳곳에서 소개된 실제 사례들만
봐도 공감되는 바다. 자기중심성을 지닌 이가 타자를 위한 어부가
되고, 보이는 상황에 압도되기 쉬운 연약한 이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힌트를 저자에게서 찾는다.

바로 ‘주님의 사랑에 대한 채무감’이다.
저자는 삼십여 년에 걸친 목회 동기는 이 ‘채무감’이라고 전한다.

먼지와 같은 존재를 부르시고, 성도들을 섬기는 존재로 보내시는
그 사랑이 지난 시간 동안 목사직을 수행하기 위해
몸부림칠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는 것이다. 

《목사, 그리고 목사직》은 목회에 대한 화두이자 올곧은 목회를
꿈꾸는 이들의 청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