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일상] 이덕주(《한국교회 처음 이야기》 저자, 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오후 삶의
행복

 
“은퇴 후에 뭘 할 건가?”
작년(2018년) 2월, 신학교 교수로 정년 은퇴를 하면서 나 자신과 아내 그리고
주변의 친구와 제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대개 대학교 교수로
은퇴한 사람들은 자기 전공분야 연구소를 차리고 강연이나 저술 활동을
지속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나는 그쪽 방향으로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그래서 연구실 자료와 도서들을 필요한 기관과 후배들에게 나눠 주고 작은

가방 하나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단 조용히 쉬기로 했다. 밀린 집필 숙제와 약속했던 집회를 제외하고는 외부
강연이나 집회를 거절하였다. 매일 집 뒤편 산자락 오솔길을 걷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었다. 한적한 숲길을 걷다가 마음이 동하면 찬송도 부르고 기도도 하고
묵상도 하였다. 그렇게 숲길을 걸은 지 두 달쯤 된 어느 봄날 작은 바위에
앉아 기도를 하려는데 내 안 깊은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너, 나 알아?”

작지만 천둥 같았다. 몽둥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모태신앙으로
목사가 되었고 신학교 교수가 되어 하나님과 예수에 대해 그렇게도 많은
설교와 강의를 했건만 정작 “너, 나 알아?” 하는 그분 질문에 “예!” 하고
대답할 수 없었다. 아는 척했을 뿐이다. 남의 이야기를 내 것처럼 위장해서.
정말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은 은총으로
바뀌었다. 내 삶의 목표와 방향이 정해졌기 때문이다. ‘그분을 아는 것’ 그것이
내 육신의 생명이 끝나기까지 내가 추구할 삶의 과제가 되었다. 그러면서
바울의 꿈이 내 꿈이 되었다.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그런 깨달음을 얻은 후 늦가을 어느 날, 역시 숲속 길을 걷던 중 이번에는 성경
말씀이 내게 임하였다. 요한복음 21장,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갈릴리
호수에서 만난 대목이었다. 주님은 그 자리에 있던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를 콕
집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베드로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사랑했으면 주님을 바라보면서 “모른다”고 부인할 수 있었겠는가?
그것도 세 번씩이나. 그래서 베드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주님 질문에
“예!” 하지 못하고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시나이다”는 식으로
애매모호하게 답했다. 그것이 베드로의 한계였다. 마음은 원인데 육신이 약한
탓으로 돌렸다.
주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 21:18) 하셨다. 지금까지는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해서
살아온 능동태 삶이었지만 이후로는 자기 의지나 판단이 아니라 남에게
‘이끌려’ 수동태로 살 것이란 말씀이었다. 베드로는 후에야 그 ‘남’이 성령인 것을 깨달았다.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이 임하면서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자기 입에서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가 터져 나오는 것을 들은 다음부터
로마에서 순교하기까지 ‘끌려다니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마침내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할 수 있었다.

이런 두 차례 음성과 말씀을 경험하면서 ‘은퇴 후’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해졌다. 내가 주도하기보다는 피동태로 살면서 부름에 응하여 부탁받은 일을
하다 보면 그분을 보다 분명하게 알게 될 것이란 희망도 생겼다.
심리학자 융(C. G. Jung)은 그것을 ‘오후 삶의 행복’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