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이우리엘 쿰회원


하루하루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지금 예수원의 꽃밭에는 어느 지역보다 때늦은 꽃을 피우기 위해 화훼 담당자와 조력자 두 분이 애쓰고 계십니다.
산 이곳저곳, 들판 여기저기서 야생화가 피고 지는 것과 대조를 이루며
예수원 전체가 갖가지 색으로 채워져 가고  있습니다.

처음 예수원을 방문한 2014년 7월은 모든 생명이 힘을 내뿜는 절정의 시기였습니다.
다같이 참여하는 예배들을 통해 생동감을 처음 마주했을 때
제 몸과 마음에 알 수 없는 파동이 일어나 어쩔 줄 모르는 상태로까지 몰고 갔습니다.

당시 무신론자이자 기독교를 비판했던 제가 이곳에 온 까닭을 명확하게 설명하거나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예수원의 시간과 공간 안에

잠시 머문다는 것보다는, 거절할 수 없는 상황과 처지에 저 자신이 서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 생동감의 절정은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었고,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 후 예수원의 삶으로 들어가기 위한 3개월 그리고 2년의 수련과정을 거쳐
현재 준회원으로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자연은 멀리서 바라보면 평온해 보이고 느릿느릿하게 변화하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딛고 있는 흙 한 줌에도 수많은 생명의 탄생과 죽음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수많은 생물과 식물 그리고 실제적인 생존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과 같은 겨울에도 곳곳에 생명이 살아 있고
어김없이 삶을 다시 시작하는 것을, 봄을 통해 봅니다.

또한 저는 예수원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도,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아이들도 보고 있습니다.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만지고 보고 느끼고 말하고 들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 기고 걷고 마침내 나에게 말을 걸어 올 때 느끼는 경이로움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같이 살고 먹고 마시던 자가 죽음을 맞이할 때 슬픔과 동시에 부활의 기미를 알아채기 시작합니다.
이전에 믿음으로만 부활을 인식했던 제가 서서히 실존으로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예수원에서 아침마다 나누는 묵상의 말씀이 마음으로 새겨져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사람을 대하는 모든 것이 점점 달라지고 있습니다.

저의 생각과 뜻대로 비판적으로 대상화했던 결혼을 예수원에서 지원과 수련을 함께 받은 자매와 한 것은
저의 인생에 가장 큰 변화 중 하나입니다.

공동체와 관계를 통해 한 몸을 이뤄 갔던 제가 2015년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고,
2016년 결혼을 통해 가정을 갖고 한 몸을 이루어 가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실재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예수원은 제가 바라보는 세상과는 너무도 다릅니다.
세상도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듯합니다. 가치와 기준이 순식간에 화석같이 굳어져
더 이상 가치 환원이 되지 않는 것으로 판명되면

사장되는 곳 말입니다. 그곳에서의 변화는 정확히 시장자본의 가치입니다.
그것에 대해 괴로워하고 많은 질문을 하지만

관념적인 비판만 남을 뿐, 저의 실재 삶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심한 왜곡과 불일치로 인해 자기 자신을
정확히 보지 못함으로 결국 인식이라는 체계가 무너지나 봅니다.
저도 투덜거리면서도 그 변화를 좇아가기 위해 아름다운 가치와 대상을 외면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변화는 기다리거나 위로하거나 안아주거나 무엇보다도 사랑에 기반을 두지 않습니다.
5년 남짓 살아온 예수원의 일상 생활은 마치 수많은 굴곡이 이어진 물줄기의 흐름 같습니다.
곳곳에
막혀진 나무더미나 알 수 없는 잔해들도 시간이 흐르면 물결 따라 움직입니다.
이 깊은 산골짜기에서 늘
대해야 하는 사람들과 자연이 변하지 않는다면 살아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하루하루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제 삶의 순간순간은 아무런 연관성도 없이 기억될 수 없을 것입니다.

1년 수련 때 묵상 중에 예수원에서 독립하라는 내면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처음에는 예수원을 떠나라는
말씀이신가 고민했는데,
어느 순간 예수원과 사람을 의존하고 분별없이 바라보는 그리고 변하지 않는

자아에서 벗어나라는 것으로 새롭게 깨달아졌습니다. 그런 과정 없이는 새로워질 수 없고 성숙해 나아갈
수 없고 진정으로 예수님이 주인 되시는 예수원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을 통해 변해야 될 것을 깨닫고,
변하는 것을 통해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보여 주시는

변치 않는 주님의 사랑으로 귀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