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년 10월 31일, 토요일. 아우구스티누스 교단 수도사이자 신학 교수인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의 성 부속 교회 문에 라틴어로 된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붙였다. 

“우리의 주인이시고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고 말씀하셨을 때, 그 분은 믿는 자의 온 삶이 회개여야 함을 뜻하신 것이다”로 시작하는 이 반박문이 어떤 영향과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34세의 루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단순히 당시 대학의 관습에 따라 토론 주제를 제시했을 뿐이다. 물론 그 주제는 당대 모든 이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바티칸의 뜻에 반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논제에 대한 토론이 이뤄지고 긍정적인 결론이 났더라면, 신실한 믿음을 가진 수도사 루터가 가톨릭과 바티칸의 영향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애초에 개혁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교의 정화를 바랐을 뿐이다. 그러나 결과는 개혁과 혁명이 되었다. 

이미 루터보다 훨씬 이전에 영국의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가 교황권에 도전했고, 그의 영향을 받은 체코의 얀 후스(Jan Hus, 1372?-1415)가 교황권의 부패를 지적하며 그리스도교의 정화를 주장했다. 이들이 종교개혁의 불씨를 일으키기는 했어도 실제 삶에 변화를 주지는 못했다.

루터의 경우는 이와 달랐다. 그로 인해 유럽이 바뀌었다. 그리스도교는 구교와 신교로 완전히 분리되었고, 신자들의 삶뿐만 아니라 이들을 이끄는 사람들의 삶도 바뀌었다. 루터와 루터의 동지들은 최초의 개신교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 후 구교와 개신교가 공존했던 독일에서 목사와 목사 가족은 신자들의 삶과 신앙의 잣대가 되었다. 귀족의 삶은 일반인의 삶과는 항상 거리가 있었다. 그들은 정치와 경제를 지배했고 그들 아래 있는 모든 이의 삶을 지배했지만, 삶의 모범이 될 수는 없었다. 가족이 없는 가톨릭 사제의 삶 역시 일반인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신앙과 지식을 갖춘 목사와 그런 가장이 중심이 된 가정은 일반인이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삶의 교과서였다. 목사의 아내, 목사의 자녀들은 다른 가정의 구성원과는 달라야 했고,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교구에서 배정받은 ‘목사관’에 거주했던 이들은 마치 유리로 된 ‘온실’에 살 듯, 모든 것이 노출된 상태에서 생활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목사의 자녀 중 아들들은 때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사회의 지식 계층을 구성하는 일원이 되기도 했다. 목사의 딸들은 목사와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점차 목사 가문이라는 하나의 계층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들이 높은 지위와 부를 누린 것은 아니지만, 독일 사회에서 그들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 책의 저자 클라우스 핏셴은 목사의 집무실이자 거주지인 목사관이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목사와 그의 아내, 자녀들에 관한 500여 년간의 역사, 특히 독일에서의 그 역사를 보여 준다. 변화하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목사와 그의 가족은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쳤는지, 그들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현재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기술한다. 이는 곧 독일 개신교 체계와 그 체계에 포함된 사람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역사는 긍정적으로 발전하기도 했고, 정체되기도 했으며, 때로는 퇴보도 했다. 그러나 단 한순간도 사회 변화와 동떨어진 적이 없었다., 500년을 거치는 동안 종교개혁 초기의 의도와 벗어난 부분도 있고, 사회와 너무 결합되어 종교의 본래 역할이 감소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우리 역사 못지않게 격변했던 독일의 역사 속에서 개신교를 이끌어 가는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종교인이자 직업인, 즉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들의 위치에 대한 성찰을 잊지 않았다. 

이들의 이런 노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와 멀어지는 사회, 이런 사회에 목회자와 목회자 자녀들이 끼친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보여 주는 이 책을 우리에게 하나의 선례를 제공한다. 선례는 현재 상황에 대한 잣대 역할을 하며,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와 전혀 다른 상황의 독일 개신교와 목회자에 관한 이 책은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1세대 목사 가정 이야기_역자 이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