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역가의 못다 전한 이야기

대학 시절, 같이 살던 선배의 서재에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집어 든 것이 루이스와의 첫 만남이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루이스의 책을 잡히는 대로 구해 읽었다. 그의 글을 통해 기독교 신앙 안에서 이성과 상상력이 만나는 실증을 보았고, 눈이 열리고 다른 세상을 보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루이스의 책을 번역하고 싶은 마음에 이끌려 번역가의 길에 들어섰다. 여러 권의 책을 번역하며 역자로 만난 루이스는 독자 때와는 조금 달랐다. 좀 더 섬세했고, 더 깊었고, 더 예리한 논리와 다양한 색깔을 품고 있었다그렇게 오랜 시간 루이스의 글을 담아내다 보니 어느새 내가 그의 글과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떤 상황이나 주장, 글을 만나면 그의 논리와 인용이 떠오르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루이스의 통찰을 빌려와 그를 안경 삼아 이런저런 주제를 다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동안 역자로서 생각했던 이야기들을 좀 더 전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듣고 학생신앙운동(SFC) 총동문회 잡지인 <개혁신앙>에 지면을 마련해 준 정병오 선배 덕분에 이 책의 원고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집어 든 장소도 정 선배의 서재였으니, 그는 나와 루이스의 인연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에 틀림없다세상에 쉬운 일이 없고 업으로 삼는 번역도 결코 쉽지 않지만, 글을 쓰는 일은 정말 힘든 작업이다. 원고 마감일이 닥칠 때마다 이번에는 쓸 수 있을까 막막할 때가 많았다. 아니, 거의 매번 그랬다. 그러나 어떻게든 사건과 만남과 실마리가 주어져 여기까지 왔다. 감사할 따름이다. 이 책에 쓴 내용이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원고의 첫 번째 독자이자 날카로운 눈으로 함량 미달의 여러 글을 버릴 수 있게 교통정리를 해주고, 가끔 괜찮은 글에는 격려도 해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돌아가신 어머니, 홀로 되셨지만 여전히 신앙 안에서 꿋꿋이 살아가시는 아버지께 이 책을 바친다.

 

홍종락